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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엔지안 제3회 발표회

1976 군 복무 후 다시 찾은 엔지안은 많이 어려웠다. 활기를 잃고 적은 참석 인원에 겨우 명맥을 이어 나가는 수준이었다. 재기의 발판을 위해 몇 몇 옛 회원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과감히 총대를 매고 지휘봉을 잡았다. 마침 스위스 알펜 민속예술단의 한국 공연을 위해 요들협회가 만들어졌고 합동 공연 엽습을 발판 삼아 인천 시민회관을 대관 계약하고 이 전의 학예회 수준의 발표회를 벗어나 본격적인 음악회 수준의 공연 기획을 하였다. 이로서 40년을 이어온 엔지안의 초석을 이룬듯 하다, 인천 최초의 알폰 연주와 김홍철과 친구들의 특별공연 에델바이스와 친구들의 지원을 받아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1976년 에델 대천캠프

참으로 쌩쌩한 20대 청춘시절 사진이다. 당시만 해도 영동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이라 여름 피서는 멀리? 대천 해수욕장을 다녀오는게 호사였던 시절이다. 사진 속의 쌩쌩한 청춘들 늙수구레한 지금까지 만남은 이어진다. 키보이스의 바닷가의 추억 윤형주의 라라라가 유행이던 시절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을 거닐며 기타치며 노래하던 친구들 영매 남희 용식 엄옥 차경애''''''

1971년 6월 에델 일영 나드리

1971년 에델바이스 제2회 발표회를 마치고 유월 초 야유회를 나온 에델바이스 팀 이다. 장소는 개발 이전의 일영 송추. 현재 뭔가 큰 시설이 들어선 언덕이다. 당시에는 칼라 사진이 막 등장하던 초기 시절이다. 새한칼라에서 컬러 사진 현상 인화 서비스를 시작했고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대체로 많은 당시 컬러 필름들 중 국내에서 현상 인화가 안되어 멀리 하와이로(미국) 현상을 보내 (약 한달 가량 걸려) 프린트를 해야했던 시절이었다. 위 의 사진도 프라스틱 재질의 인화지로 그 사진에 해당한다. 참으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YMCA잠수회 & 표창 수상.

YMCA잠수회 회장 시절 처음으로 100 여명의 스쿠버다이빙 라이센스(NAUI) 교육을 시작 하였다. 단촐한 모임 규모를 일시에 대단위 회원의 잠수회로 키우고 조직과 교육의 체계를 완성 하여 서울 YMCA 정기총회에서 공로 표창장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생각 해보니 조직의 규모 보다 정감 있던 소규모 동호회가 좋았던 듯 싶다. 스포츠 동호회는 뚝심 부리는 친구들이 많아 장 으로서 운용 관리가 힘들었다.

여행

대한민국 최 남단 마라도 남녁 운두령 산장 권대선 두령 1985년 대한민국 서쪽 끝 홍도 체험 다이빙 대한민국 동쪽 울릉도 코끼리 바위 대한민국의 최 동단 독도 헬기장에서 1987년 모래시계 이전의 정동진 역. 진짜 한가한 시골역이었다. 역전 앞 광장 이랄것도 없는 민가 몇채, 시골 다방 하나에 구멍가계가 전부다. 거제 외도 파라다이스 섬 주인 김창호씨다. 인간만세 특집 프로그램에 감사의 뜻으로 제작진을 초대해 일박 이일의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보성 녹차여행 녹차 음식 부페에 녹차 온천 녹차 시음 예절교육 여행.

1979년 행그라이딩

한국 최초로 전국 행그라이더 동호회 행사가 지금의 개포동 앞 구룡산에서 있었다 개포동 아파트 단지 개발 이전. 이곳 구룡산 중턱에 가기 위해서는 서울의 남쪽 끝인 양재 말죽거리에서 성남가는 시외버스를 (한시간에 두대 쯤?) 타고 지금의 시민의숲 역 근처에서 내려 한 30여분을 걸어 올라 간다. 때가 5월인데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밤에는 무척 추운 기억) 하며 2박3일 훈련 했다. 그해 겨울 용평스키장 스로프 위에서 행글라이딩을 한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불가능할 이벤트라 생각된다.

청춘 시대

1977년 혜화동에 있는 모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서울 YMCA청년클럽 체육대회에 인천에서 자전거로 올라와 종일 뛰고 저녁 뒷풀이를 마치고 밤 10시에 다시 인천으로'''' 당시에는 밤12시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서둘러 두시간 반 만에 통금 시간 지나 집에 도착 했다. 20대 청년 체력이었다. 지금의 안양 계곡 유원지. 에델바이스 친구들과 대둔산 등산길에''''' 1979년 전국 요들 협회 캠프 경남 밀양이다 1974년 옛날에는 이렇게 놀았다 기둥말 타기 (영화농장) 1971년 청계산 1970년 북한산 백운대 깔닥고개 (베낭 위 우쿨렐레)

월간지 <학원> 학생 기자.

지금에야 수백여 가지 초 호화 월간지가 넘쳐 나고 있지만 60년대 당시에는 유일무이한, 또 대단한 인기의 학생 월간지,이 있었다. 이사의 학생 기자에 응모, 당선되어 경기 총괄 기자로 활동한 추억이있다. 지역 문화 행사 취재를 위해 행사장과 시청 홍보과를 다니며 취재 송고한 기사 일부와 학원 저널 스크랩 일부이다. 이 외로도 특별한 재능 있는 학생들의 심층 취재 특집, 우리 학교 인기 선생님 등 많은 원고들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보관을 못해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종합 여성지 과 , , , , , , 등 각 분야의 양서를 발행하고 있는 종합출판사이다. 당 시대의 의 흥행 성공에 대해 좌측 메뉴 “옛날 옛적에”를 참조. . 아래 학원 잡지 사진은 퍼온 사진으로 훨 이전 월간지 이다. 이 연재 사진 소..

호산나 합창단.

호산나 합창단은 50년대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에서 오래된 합창단 10위 이내에 드는것으로 알고있다. 선배들에 의해 똘똘한 후배들을 골라 입회시키는 엘리트 구룹 합창단이었다 사진 중간에 두 학생 중 왼편이 본인이고 오른편은 절친 김창배 지금은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있다한다. 그 아래 구룹사진 오른쪽 검은 교복 여학생은 "어서 말을해"를 부른 7080 유심초의 초대 멤버인 이춘근이다. 이 호산나 합창단이 성인 합창단으로 바뀌고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념 연주회가 있었다. 전통적으로 연주회 끝 순서로 선배들과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레루야를 윤영진 원로 선배님의 지휘로 함께 합창 하였다 에프터 연회에서 위 등산 사진의 친구들 후배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