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활동. 44

요들 친구

양동 트리오 앙상불 김홍철과 보은 캠프 시애틀 김남희 내외와 심학산 산들래 한정식 번개 1984년 스위스 원정 공연팀 지방 회원들과 합동 연습후 동구릉에서 에델바이스 요들린 캠프 김홍철과 에델 OB구룹 가평 자라섬 오토캠핑 30여년 만에 만난 LA 스티브 박, 이장욱, 문규형 보은 유니네 별장 시애틀 남희 모녀 김홍철과 유용식 1990년 에델바이스 OB 정모 구리 인창동

1987년 YMCA 홍천강 모곡 배바위

한국의 아름다운 강 지류 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홍천강 모곡과 마곡 사이 배바위 이다. 지금은 소 남이섬이라 불리며 차량으로도 접근이 가능한 이 배바위는 민믿한 강 다이빙 중 최고의 민물 다이빙 명소이다. 갈수기 초 가을에 가면 7~8m 강 바닥 자갈이 다 보인다. YMCA 잠수회 회장 시절 잘 다니던 다이빙 포인트 이다. 마곡에서 공기통 기타 장비들은 IBS보트로 실어 나르고 사람들은 가슴까지 차는 강을 두번 지나 40여분 걸어 올라가야 이 배바위에 다달을수 있었다. 얼마 전 다녀온 이곳은 오토캠퍼들로 붐볐다.

에델바이스 스토리

1978년 최초의 스위스알펜 민속예술단 내한공연 세종 문회회관에서 스위스공연 팀과 KBS에서 공연 합창 연습 후 에델바이스, 엔지안 팀과 단체사진 1978년 한국 요들협회 창립. 제 1회 전국대회 진부령 알프스산장 1979년 에델 친구들 동구릉 1984년 에델바이스 홍천강 마곡 캠프 MBC 차인태 아침싸롱 취재팀 녹화 1984년 KBS 생방송 오늘 야외 녹화 마곡 평풍 바위 앞 1979년 하조대 여름캠프 후 귀가중 영동 고속도로 옛 대관령 휴게소에서

인천 엔지안 스토리

1979년 엔지안 창립 7주년 기념식 인천YWCA회관 1978년 제1회 요들협회 캠프 알프스산장 인천팀 젊은 시절의 김홍철샘,박명선,김용주씨가 보이고 박호문,서용률 김남희도 보인다. 그 아래 사진에는 알프스산장 김성균씨 내외도 있다. 1982년 요들협회 캠프 밀양 단체사진과 인천팀 1980년 하조대 캠프 1978년 제3회 발표회 야외 단체사진 숭실대학교 1975년 엔지안 2회 발표회 특별 출연 김홍철. 단체 사진

1978년 엔지안 제3회 발표회

1976 군 복무 후 다시 찾은 엔지안은 많이 어려웠다. 활기를 잃고 적은 참석 인원에 겨우 명맥을 이어 나가는 수준이었다. 재기의 발판을 위해 몇 몇 옛 회원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과감히 총대를 매고 지휘봉을 잡았다. 마침 스위스 알펜 민속예술단의 한국 공연을 위해 요들협회가 만들어졌고 합동 공연 엽습을 발판 삼아 인천 시민회관을 대관 계약하고 이 전의 학예회 수준의 발표회를 벗어나 본격적인 음악회 수준의 공연 기획을 하였다. 이로서 40년을 이어온 엔지안의 초석을 이룬듯 하다, 인천 최초의 알폰 연주와 김홍철과 친구들의 특별공연 에델바이스와 친구들의 지원을 받아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1976년 에델 대천캠프

참으로 쌩쌩한 20대 청춘시절 사진이다. 당시만 해도 영동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이라 여름 피서는 멀리? 대천 해수욕장을 다녀오는게 호사였던 시절이다. 사진 속의 쌩쌩한 청춘들 늙수구레한 지금까지 만남은 이어진다. 키보이스의 바닷가의 추억 윤형주의 라라라가 유행이던 시절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을 거닐며 기타치며 노래하던 친구들 영매 남희 용식 엄옥 차경애''''''

1971년 6월 에델 일영 나드리

1971년 에델바이스 제2회 발표회를 마치고 유월 초 야유회를 나온 에델바이스 팀 이다. 장소는 개발 이전의 일영 송추. 현재 뭔가 큰 시설이 들어선 언덕이다. 당시에는 칼라 사진이 막 등장하던 초기 시절이다. 새한칼라에서 컬러 사진 현상 인화 서비스를 시작했고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대체로 많은 당시 컬러 필름들 중 국내에서 현상 인화가 안되어 멀리 하와이로(미국) 현상을 보내 (약 한달 가량 걸려) 프린트를 해야했던 시절이었다. 위 의 사진도 프라스틱 재질의 인화지로 그 사진에 해당한다. 참으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었다.

YMCA잠수회 & 표창 수상.

YMCA잠수회 회장 시절 처음으로 100 여명의 스쿠버다이빙 라이센스(NAUI) 교육을 시작 하였다. 단촐한 모임 규모를 일시에 대단위 회원의 잠수회로 키우고 조직과 교육의 체계를 완성 하여 서울 YMCA 정기총회에서 공로 표창장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생각 해보니 조직의 규모 보다 정감 있던 소규모 동호회가 좋았던 듯 싶다. 스포츠 동호회는 뚝심 부리는 친구들이 많아 장 으로서 운용 관리가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