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옛날 이야기

학생잡지 <학원>

제호 ds1cbw 2016. 9. 28. 13:48

 

 

 

 

우리에게 학원세대라고 구분 지을 수 있는 특별한 세대가 있다.

한국전쟁 후 부터 1970년대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닌 지금 60대 전후의 연령층이다.

이들이 학창 시절에 애독했던 잡지가 바로 학원(學園)이다.

우리나라의 어떤 잡지도 자신의 이름을 딴 세대를 만들지 못했는데,

오직 <학원>만이 그것을 이룬 것이다.

학원을 읽은 세대가 60대 전후의 연령층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952년 11월에 창간하여 1979년 3월에 폐간되기까지 30년 가까이 지속된

이 잡지는 40대 전후반의 세대까지 망라한다.

창간호는 장만영 시인을 주간으로 1952년 11월에 피난지 대구에서 창간되었다.

이후 전쟁이 끝나면서 서울로 돌아온 이 잡지는 기라성 같은 문화인들이

대거 참가 하게된다. 김용환 화백의 만화 <코주부 삼국지>, 정비석씨의 소설

<소년홍길동전>, 김래성씨의 추리소설 <검은별>, 김성환 화백의 명랑만화

<꺼꾸리군 장다리군>, 조흔파씨의 명랑소설 <얄개전> 등 인기연재물을 확보하면서

판매에도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1954년 8월호는 8만부를 발행했는데,

한국전쟁 직후 8만부는 엄청난 부수였다. 그 무렵 학원사 주간으로 있던 최덕교씨는

당시 최대의 일간지 편집장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오늘로써 우리 신문이 드디어 5만부를 넘었어." 국내 최대의 일간지가 독자 5만부를

확보했다고 기뻐할 무렵에 학생 월간지 <학원>은 8만부의 판매를 이룬 것이다.

학원이 그처럼 인기를 끈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컴퓨터나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도 드물었고, 단행본 출판도 부진했던 그 시절에

<학원>은 거의 유일한 읽을거리였다. 별다른 레져 활동도 없고,

 입시 지옥을 몰랐던 그 무렵의 학생들에게 학원은 교양과 정서를 가꾸는 교사이자,

즐거운 오락이었고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친구였던 것이다.

또한, 학원은 당시 우리 문화계가 총력을 기울여 만든 정수였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별다른 문예지도 없었으므로 정비석, 김래성, 윤백남, 김광주,

최정희 등 당대의 소설가들이 학원에 작품을 실었다.

또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같은 청록파 시인들과 장만영씨 등

교과서에서 친숙한 시인들이 학생들의 작품을 친절하게 평해주었다.

그러므로 학원 초창기의 독자들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구독을 하기도 했다.

학원은 창간 때부터 독자투고와 학원문학상을 통하여 많은 학생 문인을 배출시켰다.

<별들의 고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인호씨도 학원에 시를 발표하였으며,

문학평론가 김병익, 수필가 유경환, 시인 정공채, 마종기, 황동규, 이승훈 등

많은 문인들이 학원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60대 전후의 세대를 학원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학원>은 성장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던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다른 레져 문화가 생겨나면서 학원의 영향력은 점차 축소되었다.

또한 <여학생>, <진학> 등 다른 학생 잡지의 퇴조와 함께 적자에 허덕이던 학원도

78년 4월호로서 간행을 중단하였다.

 

현재는 종합 여성지 <주부생활>과 <여성>, <건강>, <취미·실용>, <외국어>,

<인문사회>, <자연과학>, 등 각 분야의 양서를 발행하고 있는 종합출판사이다.

 

[출처] 학원세대의 추억을 가꾼 학생잡지|작성자 목연 (요약본입니다)

 

당대 <학원>의 역량과 흥행 성공 요인을 분석한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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