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보료 줄이려면 집과 차 팔아야 할 판" 본문
• 지난해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는 소득이 없었지만 매월 5만원의 건강보험료(건보료)를 내야 했다. 정부가 월세 50만원을 전세로 환산하면서까지 건보료를 부과한 것이다. 얼마 전 퇴임한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5억원대 재산이 있고 연간 수천만 원대 연금을 받지만 건보료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19만원가량의 건보료를 내야 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부인의 피부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건보료 부과 체계의 형평성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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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요구는 형평성이다. 한마디로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이 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적게 부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 차장인 40대 김 아무개씨가 부담하는 월 건보료는 9만5730원이다. 월급 300만원의 약 3%(직장인 가입자 적용 비율)인 8만9850원에다 장기요양보험료 5880원을 합한 금액이다. 김 차장은 3억원짜리 아파트에 살고, 중형 자동차 1대를 굴리고, 은행에서 예금 이자를 받고 있다. 한편 직업이 없는 60대 이씨 부부가 받은 건보료 고지서에는 13만5030원(장기요양보험료 8300원 포함)을 2월10일까지 내라고 적혀 있다. 비정규직 공공근로로 한 달 20만원 벌이가 전부인 이씨의 건보료가 더 많은 이유는 2억원이 조금 넘는 집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상식적으로 이씨보다 김씨에게 더 많은 건보료가 부과돼야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건보료 부과 기준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 "20~30년 전 만들어진 기준, 현실과 안 맞아"
• 건보료 부과는 직장인이냐 아니냐에 따라 갈린다. 직장인이면 월급의 약 6%에 해당하는 금액이 건보료로 책정되고, 이 가운데 절반은 회사가 부담하기 때문에 개인이 내는 건보료는 약 3%다. 예컨대 한 달에 100만원을 버는 사람은 3만원, 500만원 월급쟁이는 15만원이 건보료로 나간다. 근로소득에 비례해 건보료가 정해지므로 10억원짜리 집에 살고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월급 외 소득이 많아도 건보료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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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더 이상한 부과 기준이 적용된다. 퇴직자나 자영업자는 지역가입자로 분류되는데, 소득이 불분명해서 정부는 재산(집)·자동차·사업소득·금융소득 따위를 종합해 건보료를 매긴다. 그러나 집과 자동차에 건보료를 매기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집은 대부분 대출을 받아 마련한 것이어서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는데 건보료까지 부담하니 서민은 이중고를 겪는다. 처음 건강보험을 도입할 당시에는 자가용이 있으면 소득이 높을 것으로 추정하고 자동차에도 건보료를 물렸다. 그러나 요즘 거의 모든 가정에 자동차가 있는 상황에서도 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0년이 넘은 승용차와 상용차에도 3만원 이상의 건보료가 부과된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오건호 공동위원장은 "이 기준은 20~3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평생 일해서 집과 자동차는 기본으로 가질 수 있는 재산이고, 집이나 자동차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건보료를 더 부담시키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조 아무개씨(62)는 직장에서 월급 251만원을 받고 건보료는 7만5170원을 냈다. 지난해 퇴직한 후 건보료가 18만8600원으로 껑충 뛰었다. 연금소득(100만원), 주택(2억2700만원), 1600cc 자동차에 피부양자(배우자, 자녀 3명)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씨는 "건보료를 줄이려면 집과 차를 팔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같은 재산이라도 형태에 따라 건보료가 달라진다. 3억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면 12만원 이상의 건보료가 부과된다. 만일 아파트를 판 돈을 은행에 넣어두면 월 54만원의 이자가 발생하는데 이 금융소득에 붙는 건보료(약 6%)는 3만원이 조금 넘는다. 거의 4배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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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자신이 사는 집값이 오르면 건보료도 덩달아 오른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서민아파트에 사는 할머니는 아파트를 담보로 주택연금을 받아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매년 건보료가 올랐다. 2004년 4만5610원이던 것이 올해 14만690원으로 10년 만에 3배나 올랐다. 할머니가 지역 보험공단에 문의했더니 아파트의 공시지가가 올랐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공단이 국민을 위한 조직인지 세금을 거두기 위한 기관인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 연 소득 2000만원 이상 피부양자 2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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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5억원 상당의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타는 강 아무개씨는 연 2900만원의 금융소득과 1000만원가량의 연금소득이 있지만 부담하는 건보료는 0원이다. 1억4000만원짜리 집과 2000cc 자동차 한 대를 보유하고 임대소득이 연 500만원인 배 아무개씨는 매월 16만원의 건보료를 낸다. 두 사람의 차이는 강씨가 자녀의 피부양자인 반면, 배씨는 자녀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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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씨처럼 지역가입자이면서도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방법은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들어가는 것이다. 재산(집)이 9억원이 안 되고 연간 소득이 4000만원 미만이면 피부양자 조건이 된다. 3년 전 공무원직에서 은퇴한 한 아무개씨(62)는 매달 300만원이 넘는 연금을 받고 연간 1900만원의 금융소득이 있다. 2억5000만원짜리 아파트와 중형차를 타고 다니지만 아들의 피부양자가 된 후 건보료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 소득이 2000만원 이상이면서도 피부양자로 분류돼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이 약 20만명이다. 또 연금소득이 2000만원 넘는 퇴직 공무원·군인, 사립학교 교직원이 16만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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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직장가입자로 변경하거나 위장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연예인들이 출연료·광고모델료 등으로 고액의 수입을 올리면서도 연예인협회 고문 등의 직함을 받아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식이다. 이번 달에 1억원의 소득을 올렸더라도 월급 100만원에 대한 건보료 3만원만 부담하면 되는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고소득자에게 유리하고 저소득자에게 불리한 건보료 부과 체계에 문제가 많다며 건보공단에 접수된 민원은 지난 한 해 동안 7000만건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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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30일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년유니온' 등 복지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정부의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 중단을 규탄하며 재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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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책임한 복지부와 일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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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정부는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을 국정 과제로 정하고 2013년부터 부과체계개선기획단을 꾸렸다.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를 단장으로 각계 전문가 10여 명이 모여 개편안을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방안은 봉급 이외에 종합소득(임대·이자·배당·사업 소득 등)이 있는 고소득 직장인과 소득이 많은데도 보험료를 내지 않는 피부양자에게 보험료를 부과하자는 것이 골자다. 건보료 부과 기준에서 자동차는 아예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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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개편안대로라면 지역가입자 중 600만 세대는 월 3만6000원의 건보료가 줄어든다. 직장인 가운데 연봉 외 연간 소득이 2000만원 이상, 피부양자 중 총소득이 2000만원 이상인 45만 세대는 13만~19만5000원이 증가한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 국장은 "기획단이 내놓은 개편안은 일부 미흡해서 보완이 필요하지만 부과 체계 개편 자체는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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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단이 구성된 지 약 2년 만인 1월29일 최종안을 발표하기로 했지만 하루 앞둔 1월28일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부담이 늘어나는 계층을 설득하기 위한 충분한 논리와 시간이 필요하다"며 개편 추진을 백지화했다. 여론의 반발은 거셌다. 불합리한 부과 체계를 고치는 데 이견이 없는 상황에서 2년간의 사회적 논의를 부정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개선안을 짰던 부과체계개선기획단장 이규식 교수는 2월2일 비판 성명서를 내고 사퇴했다. 위원들이 문 장관의 오찬 요청을 거부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일반 국민에 이어 전문가들까지 정부에 등을 돌린 셈이다. 이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사퇴했으므로 다시 그 자리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며 "무책임한 그런 사람들(복지부)과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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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충분히 검토한 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복지부 관계자는 "1월28일 발표 내용에서 선회하거나 번복한 사실이 없다"며 "연내 재추진은 사실이 아니며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 문제는 최신 자료를 활용해 더 세밀하게 분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재욱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팀장은 "담뱃값 인상 등 서민 증세는 밀어붙이면서 사회적 공감대 속에 논의된 건보 부과 체계 개편은 고소득자의 반발을 의식해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백지화하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며 "최근 연말정산 논란을 고려한 정치적 셈법에 치우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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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진섭 기자 / no@sisapress.com연 소득 2000만원 이상 피부양자 20만명서울에 5억원 상당의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타는 강 아무개씨는 연 2900만원의 금융소득과 1000만원가량의 연금소득이 있지만 부담하는 건보료는 0원이다. 1억4000만원짜리 집과 2000cc 자동차 한 대를 보유하고 임대소득이 연 500만원인 배 아무개씨는 매월 16만원의 건보료를 낸다. 두 사람의 차이는 강씨가 자녀의 피부양자인 반면, 배씨는 자녀가 없다는 것이다.강씨처럼 지역가입자이면서도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방법은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들어가는 것이다. 재산(집)이 9억원이 안 되고 연간 소득이 4000만원 미만이면 피부양자 조건이 된다. 3년 전 공무원직에서 은퇴한 한 아무개씨(62)는 매달 300만원이 넘는 연금을 받고 연간 1900만원의 금융소득이 있다. 2억5000만원짜리 아파트와 중형차를 타고 다니지만 아들의 피부양자가 된 후 건보료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 소득이 2000만원 이상이면서도 피부양자로 분류돼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이 약 20만명이다. 또 연금소득이 2000만원 넘는 퇴직 공무원·군인, 사립학교 교직원이 16만명에 달한다.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직장가입자로 변경하거나 위장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연예인들이 출연료·광고모델료 등으로 고액의 수입을 올리면서도 연예인협회 고문 등의 직함을 받아 1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식이다. 이번 달에 1억원의 소득을 올렸더라도 월급 100만원에 대한 건보료 3만원만 부담하면 되는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고소득자에게 유리하고 저소득자에게 불리한 건보료 부과 체계에 문제가 많다며 건보공단에 접수된 민원은 지난 한 해 동안 7000만건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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